생각해 보니 동지에 크리스마스가 껴있었다. 밤이 가장 긴 절기 동지. 그때 축제가 벌어진다니. 아, 밤을 이겨내기 위해 축제를 벌이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니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 있는 귀신 대부분은 2002년 월드컵 때 다 퇴마 됐다는 이야기. 전 국민이 빨간 옷 입고 응원하며 양기를 뿜어댔기 때문이랬나.

크리스마스도 그렇게 돼버린 걸까. 밤이 긴 동지에 있는 예수님의 생일.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불 켜진 모텔 방에는 양기가 끓어 넘친다. 예수님 생일과 더불어 인간들의 양기분출. 크리스마스에는 어쩌면 귀신들이 이중고를 겪을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근거 없는 기대가 찾아온다. 그때가 되면 마법처럼 연인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 세상에 마법은 없다. 곤지암 정신병원을 물리력으로 퇴마 하는 인간 세상에서 마법이란 단어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공포체험의 메카이던 곤지암 정신병원이 포크레인 아래 무너지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역시나 이 세상에서는 인간이 제일 무서울지도.

최근에는 동네에서 괜찮은 바를 찾았다. 조용하고 내 또래 단골이 많아 보이는 바. 친구 사귀기 좋으려나. 하지만 나는 대체로 사람을 싫어하기에 친구를 필요로 하면서도 친구를 사귀고 싶지가 않았다. 모순적인 감정. 존나게 외롭다. 근데 사람이 싫달까.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밑바닥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어느 순간 사람을 믿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어쩌면 이 또한 방황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인간관계에 대한 갈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허황된 기대를 다시 해본다.

사람 싫어한다면서 무슨 기대를 한다는 건지. 가끔은 내가 이중인격자 같다.

크리스마스 이브. 남들은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하루종일 집에서 유튜브에 올릴 다음 영상에 대해 고민했다. 이건 저래서 별로고 저건 이래서 별로고.

원래 모순적인 애들이 유난히 까탈스러운 것 같다. 그냥 좀 하면 좋을 텐데 왜 이리 유난인지.

몇 시간 동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도 안 오고 답답하고 무기력하기만을 반복. 아 오늘 다들 놀러 나갈 텐데 약속도 없이 책상에 앉아 골머리만 앓기는 싫었다. 그래 일단 나가자.

“자리 있나요?”

헐레벌레 걸어서 도착한 바는 거의 만석이었다. 왜 내가 이걸 생각 못했을까. 다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여럿이서 다닌다는 것을. 바 안은 연말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각자의 연인∙친구들과 나누는 사람들의 대화가 위스키 향을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슈발 괜히 왔구나. 나는 구석진 자리에 앉으며 낙담했다. 나랑 비슷한 처지인 사람을 만나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걸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에 난 피로감을 느끼며 핸드폰 게임을 켜고 불편한 의자 위에서 위스키를 홀짝였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은 빠지지 않았다. 게임에서 죽기를 몇 번. 어느새 잔에 있던 위스키도 동이 났다.

무리하지 말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한산한 거리를 걸었다. 집.. 집을 가야 한다. 이런 울적한 마음으로 다른 곳을 방문했다간 기억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실지도 모르니까. 난 흔들리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편의점은 돌아간다. 중년의 남자가 계산대를 지키며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를 뒤로하고 자주 먹는 탄탄면 컵라면을 집은 뒤 튀긴 닭꼬치 하나를 달라했다.

“허허. 1+1이에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멋쩍게 웃었다. 좋은데 뭘까 이 씁쓸한 기분은. 남자는 콜라도 증정이라며 내게 건넸다. 5000원도 안 내고 풍족한 식사를 얻었다. 정확히 말하면 야식이기 하지만.

남자가 건넨 콜라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껴졌다. 좋은데 참 뭐랄까 씁쓸하달까. 난 편의점을 나가기 전 남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때는 이미 12시가 넘어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이 말을 하면 남자의 표정이 곧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나라면 그럴 것 같았기에. 메리 크리스마스인데 편의점의 쨍한 조명 아래 서있다니. 내가 남자라면 증정 콜라를 잔뜩 흔들어 버리고 싶을 것 같았기에 나는 하려던 말을 속으로 삼키고 편의점을 나섰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당장 달려가서 라면을 입에 쑤셔넣어야 할 것 같았다. 난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끓인다음 내복 차림으로 라면을 흡입했다. 먹으면서 볼 영상을 찾는데 온통 계엄 관련 뉴스. 나는 한숨을 쉬며 구독채널 목록을 뒤졌다.

“아 배불러.”

닭꼬치를 먹는데 배가 터질 것 같았다. 화면 속 영상은 계속 흘러가고 내 몸은 뒤로 점점 눕고. 그래도 배부른 크리스마스구나. 난 남자가 증정해준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신 뒤 영상을 끄고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과 화장실 문밖에서 들리는 캐롤. 나는 과식한 내 배를 보며 28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하하하 가끔은 1초당 822 가구를 도는 산타가 주는 선물에 몸이 뚫려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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